우리는 누구나 생각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순간 깊이 생각하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순간, 우리는 최소한의 사고만 사용하며 가장 단순하고 편한 선택을 합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고 부릅니다.
즉, 돈을 아끼는 구두쇠가 아니라, 생각 자원을 아끼는 구두쇠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뇌는 원래부터 에너지를 절약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분석 대신 빠른 직관, 사실 확인 대신 표면적 인상, 논리적 검증 대신 익숙한 믿음에 기대는 방식이 더욱 자연스럽게 작동합니다.

왜 우리는 ‘생각’을 아끼려 할까?
인간의 뇌는 전체 신체 에너지의 20% 이상을 소비할 만큼 고비용 기관입니다. 뇌 입장에서는 “괜히 과부하 걸릴 정도로 생각하지 말고, 가능한 한 단순하고 빠르게 판단하라”는 것이 기본 전략입니다.
이는 원시 시대부터 내려온 생존 방식이기도 합니다. 포식자를 만나면 분석할 시간이 없었고, 빠른 판단이 곧 생존 확률이었습니다. 이 습관이 현대에도 남아 있어, 지금도 우리는 복잡한 문제 앞에 서면 본능적으로 “생각을 줄이고 직관이나 익숙한 패턴에 의존”하려 합니다.
스마트폰·SNS 시대 들어 정보가 폭증하면서, 깊은 사고보다 빠른 반응이 더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인지적 구두새의 대표적인 예시
인지적 구두쇠는 일상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판단할 때, 상대의 말과 행동을 종합하기보다 겉모습만 보고 성격까지 단정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 이슈를 볼 때도 사실보다 ‘편 가르기’가 더 쉬워 복잡한 논리 검증 없이 내 편은 무조건 옳고, 상대는 무조건 틀렸다고 여기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인터넷 기사 역시 제목만 보고 내용을 모두 안다고 착각해버립니다. 투자 판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검증된 정보 분석보다는 ‘카더라’에 기대거나 차트의 한 장면만 보고 매수·매도를 결정하는 현상이 반복되곤 합니다.
장점도 있지만, 문제는 더 크다
인지적 구두쇠는 완전히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빠른 판단은 시간 절약과 업무 효율성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복잡한 문제일수록 “생각을 아끼는 태도는 곧 오류와 편향을 키우는 위험 요소”가 됩니다.
깊이 검토해야 할 사안을 직관만으로 다뤘을 때, 우리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가짜뉴스에 쉽게 흔들리거나, 특정 집단·정보에 갇혀 사고가 폐쇄적으로 굳어버리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는 ‘생각의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오히려 적극적인 인지적 투자가 요구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인지적 구두쇠 모드’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인지적 구두쇠에서 벗어나려면 무조건 많은 생각을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핵심은 ‘멈춤’과 ‘질문’입니다.
즉각적인 판단 대신 “내가 왜 이렇게 생각했지?”라는 최소한의 검증만 거쳐도 뇌는 자동 모드에서 벗어나 좀 더 체계적 사고(시스템2)를 작동시킵니다. 다양한 관점을 의도적으로 접하고, 쉽게 믿고 싶은 정보일수록 한 번 더 확인해 보는 습관도 도움이 됩니다.
생각을 아낀다고 모두 손해를 보는 건 아니지만, 생각을 과도하게 아낄 때 삶의 질, 관계, 판단력은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우리는 본능적으로 생각을 절약하려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단순한 ‘빠른 판단’보다 ‘정확하고 열린 판단’을 요구합니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인지적 구두쇠 모드가 강화되면 오히려 스스로를 가두게 됩니다. 순간의 편안함을 위해 사고를 줄이는 선택은 결국 향후 더 큰 리스크로 돌아오곤 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많은 생각’이 아니라 ‘깨어 있는 생각’입니다. 잠시 멈추고 한 번 더 질문하는 태도만으로도 우리는 인지적 구두새를 넘어서 보다 현명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참고> 정재승 교수, 인지적 구두쇠가 되는 이유
"우리 몸에서 제일 에너지를 많이 쓰는 기관이 뇌"라며 뇌가 약 23%, 근육이 약 22%, 간이 약 20%의 에너지를 쓴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우리의 뇌는 최소 에너지로 생존하기 위해 인지적 에너지를 아껴 쓰는 태도를 유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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