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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의 가치와 중요성, 보존 역사

기적 소리 2025. 9. 3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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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1392년~1863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으로 기록한 방대한 공식 역사서입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국보 제151호입니다.

 

가치 및 중요성

진실성과 신뢰성: 사관(史官)의 독립성이 보장되어 왕이라도 함부로 열람할 수 없는 **사초(史草)**를 바탕으로 편찬되었기에, 기록의 객관성과 신빙성이 매우 높습니다. 왕의 사후에 편찬하는 원칙으로 인해 당대의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려 노력했습니다.

방대한 내용과 기간: 단일 왕조의 역사 기록으로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472년간의 역사를 담고 있으며,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천재지변 등 조선시대 전반을 총망라하는 백과사전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기록 문화의 정수: 활자를 이용해 인쇄 간행되었으며, 현존하는 조선 왕조 시대의 원본 실록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인쇄 문화 수준을 보여줍니다.

동아시아사 연구 자료: 조선뿐만 아니라 주변국인 중국, 일본 등의 역사 및 외교 관계 연구에도 귀중한 기본 자료입니다.

보존 역사 (사고와 보존 노력)

초기 4대 사고

실록 편찬 후 화재나 전란 등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여 여러 부를 인쇄하여 중앙의 춘추관 사고와 지방의 충주, 전주, 성주 사고 등 4대 사고(史庫)에 나누어 보관했습니다 (분산 보관 원칙).

임진왜란과 전주사고본

임진왜란(1592년) 때 춘추관, 충주, 성주 사고의 실록은 모두 소실되었으나, 전주 사고본만 유생 안의(安義)와 손홍록(孫弘祿) 등의 노력으로 내장산 등으로 옮겨져 유일하게 보존되었습니다.

임진왜란 후 5대 사고

전주사고본을 원본으로 다시 인쇄하여(재인본), 사고를 험준한 산속으로 옮겨 설치했습니다. 중앙의 춘추관 사고 외에 지방의 외사고로 강화도 정족산, 평창 오대산, 봉화 태백산, 무주 적상산에 사고를 설치하여 5대 사고 체제를 갖추고 실록을 보관했습니다.

체계적인 관리

사고에는 전담 관리를 두었으며, 주기적으로 실록을 꺼내어 햇볕에 말리고 습기를 제거하며 보존 상태를 점검하는 포쇄(曝曬) 작업을 했습니다 (보통 3년에 한 번).

일제강점기 이후

일제강점기에 실록의 관리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은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교)으로, 오대산본은 일본 도쿄제국대학으로 옮겨졌습니다. 오대산본은 1923년 관동 대지진 때 대부분 소실되는 참화를 겪기도 했습니다.

이후 남아있던 실록들이 환수되어 현재는 국가기록원국립고궁박물관 등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강원도 평창에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이 개관하여 그 가치를 알리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조선왕조실록은 472년에 걸친 한 왕조의 역사를 거의 빠짐없이, 그것도 놀라운 객관성과 진실성을 바탕으로 기록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문화유산입니다.

사관들의 목숨을 건 직필(直筆) 정신과, 전란의 위협 속에서도 실록을 지켜낸 선조들의 숭고한 기록 보존 의지가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 방대한 기록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현대 사회를 이해하고 미래를 통찰하는 귀중한 보고(寶庫)입니다. 실록에 담긴 역사의 성공과 실패, 지혜와 교훈은 시대를 넘어 우리 민족의 정신적 자산이자, 인류의 보편적인 세계기록유산으로서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500년 역사의 '모든 일'이 기록돼있다..'조선왕조실록'이 위대한 이유 이 영상은 조선왕조실록이 500년 역사를 기록한 위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어 실록의 의의와 가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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