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의 나라, 조선을 위협으로 본 일본
예로부터 조선은 ‘호랑이의 나라’로 불릴 만큼 맹수가 많았습니다. 민속과 신앙, 전설 속에서 호랑이는 권위와 용맹의 상징이자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호랑이는 단순한 야생동물이 아닌, 일본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정호군이 사냥한 호랑이 두마리. 왼쪽이 한마리를 사냥한 포수 최순원. 오른쪽이 정호군을 창설한 야마모토 다다사부로. 그의 손에 사냥총이 들려있지만 실제로 사냥을 하지는 않았다. 사진=에이도스 제공
일본은 호랑이를 ‘해수(害獸)’, 즉 해로운 짐승이라 부르며 체계적 박멸을 추진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식민지 조선의 자연과 상징적 존재를 통제하고, 식민 지배의 질서를 확립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숨어 있었습니다.
1917년, 정호군의 결성
1917년 일본은 민간 사냥꾼을 동원해 ‘정호군(征虎軍)’이라는 대규모 사냥대를 조직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호랑이를 정벌하는 군대’라는 의미였습니다.
이들은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아 총기와 화약으로 무장하고, 지리산·태백산·백두대간 등 호랑이 서식지 깊숙이 들어가 조직적으로 사냥을 진행했습니다.
전통적인 포수들의 개별 활동이 아닌, 근대식 무기와 행정력이 결합된 식민 권력 차원의 ‘호랑이 토벌 작전’이었던 셈입니다.
사냥의 실상과 결과
정호군의 활동은 단기간에 조선 호랑이 개체 수를 급감시켰습니다. 잡힌 호랑이의 가죽과 송곳니, 뼈는 귀한 사냥 전리품으로 일본 본토로 반출되었습니다.
이미 19세기 말부터 벌목과 개발로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던 상황에서, 조직적인 토벌까지 겹치면서 호랑이는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1920~1930년대에 들어서면 호랑이 목격 사례는 극히 드물어졌고, 1940년대 이후에는 사실상 절멸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단순한 ‘해수 구제’가 아니라, 조선의 자연과 상징을 지우려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평가됩니다.

호랑이 두 마리를 포획하고 찍은 기념사진. 정호군 총대장 야마모토(검은 모자)와 포수 최순원.
호랑이 사냥의 이면
호랑이 사냥은 단순한 안전 확보 차원을 넘어 문화적·정치적 상징성을 지녔습니다.
조선 민중에게 호랑이는 용기와 자존심의 상징이었지만, 일본에게는 불안정 요소이자 식민지 통치의 걸림돌이었습니다. 따라서 정호군의 활동은 생태계 파괴를 넘어, 조선인의 정신적 상징을 제거하려는 의도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결국 호랑이의 멸종은 한반도의 생태적 손실일 뿐 아니라, 민족적 상징을 잃은 역사적 비극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의미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야생 호랑이를 한반도에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민화 속의 까치호랑이, 판소리와 설화 속 호랑이는 여전히 우리의 정신과 문화 속에 살아 있습니다.
정호군의 역사는 단순한 사냥 기록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의 억압과 그 속에서 사라진 생태와 상징을 돌아보게 하는 사건입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곧 미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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