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왕산>
서울시를 분지로 둘러싸고 있는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이다. 조선이 건국되고 도성(都城)을 세울 때, 북악산을 주산(主山), 남산(南山)을 안산(案山), 낙산(駱山)을 좌청룡(左靑龍), 인왕산을 우백호(右白虎)로 삼았던, 조선조의 명산이다. 산의 높이 338.2m이며 인왕산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인왕사(仁王寺)라는 불교사찰이 있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산의 능선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남쪽으로 행촌동과 사직동이 있고 동쪽으로 필운동, 누상동, 옥인동, 신교동, 청운동으로 이어지며 북쪽 산허리에 자하문고개를 통해 북악산(北岳山)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지난다. 서쪽으로는 서대문구 홍제동이 있다. 인왕산 자락에 청와대가 있다.
<청와대>
청와대는 1960년 대한민국 정부통령 부정선거로 발발한 4·19 혁명의 영향으로 당시 현직 대통령 이승만이 물러나고 차기 대통령이 된 윤보선이 1960년 12월 경무대에서 명칭을 변경한 것이다. 당시 경무대란 이름이 독재 정권과 부정부패의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바꾼 것이었는데 윤보선의 의뢰를 받은 김영상 서울시사편찬위원장이 화령대(和寧臺)와 청와대 두 후보군을 제시했고 윤보선은 푸른 기와집을 뜻하는 청와대가 우리 고유 문화를 나타낸다는 의미에서 이를 택했다고 한다.[3][5] 박정희가 집권한 뒤 황색이 더 귀한 색이라며 황와대로 바꾸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박정희는 이를 일축했다고 한다.
박정희가 집권할 당시 청와대 구조는 1층에 대통령 집무실이 있고 2층은 대통령 가족의 생활 공간이었다. 그런데 건물이 협소하고 노후화됐다는 지적이 나와 박정희 정권 시절 대대적인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이후 노태우 정부 당시 22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의견을 모아 1991년 9월 지금의 본관과 관저, 춘추관을 신축했다. 그리고 김영삼 정부 당시 옛 본관 건물을 모두 철거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참모와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본관 구조를 바꾸는 공사를 하고자 했지만 최종적으로 실패했다.[6][7] 한편, 노무현 때 박정희가 1975년 만들었던 전시 대피 시설을 2003년 수리하여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지하벙커)을 만들었다.
20대 대선에서 승리한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이었던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공식화했다. 다만 서울청사로 옮기는 것은 경호 문제가 있어 추진하기 어렵고 대신 용산구에 위치한 국방부 청사로 이전할 뜻을 밝혔고, 실제로 이전하였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일반에 개방되고 국방부 청사는 대한민국 대통령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