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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지게 효자' 이군익, 유퀴즈 출연

기적 소리 2025. 6. 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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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군익 씨는 2006년, 당시 92세였던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직접 제작한 지게에 아버지를 태우고 금강산을 오른 효행으로 '지게 효자'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이 감동적인 사연은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최근에는 2025년 어버이날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며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금강산 효행의 시작

이군익 씨는 어머니의 별세 이후 실의에 빠진 아버지를 위해 금강산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92세의 고령으로 도보 등반이 어려웠기에, 이 씨는 알루미늄 지게를 개조하여 팔걸이, 안전벨트, 발받침 등을 추가한 '지게 의자'를 제작했습니다.

이 지게에 아버지를 태우고 금강산을 등반하는 동안, 아버지의 체중 43kg과 지게 무게 13kg을 합한 56kg을 짊어지고 3시간 동안 산을 올랐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 씨의 어깨와 팔에는 피멍이 들었지만, 아버지의 기쁨을 보며 고통을 잊었다고 전했습니다 .

 
 
 

국내외의 반향

이군익 씨의 효행은 국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큰 감동을 주었고, 중국 산둥성의 방송에서도 소개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아버지를 모시고 중국의 태산을 등반하였으며, 덕유산, 팔봉산 등 국내의 여러 산도 함께 올랐습니다. 이러한 효행은 많은 이들에게 효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였습니다 .

 
 

효 문화 전파와 유산 기증

이군익 씨는 효행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게를 대전의 한국효문화진흥원에 기증하였으며, 효학 박사로서 효 문화를 전파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그의 지게는 현재 진흥원에 전시되어 있으며, 효의 상징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

2025년 6월 4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이군익 씨는 당시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하며, 북한 감시원도 그의 효심에 감동하여 지게를 통과시켜준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이 방송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

 

이군익 씨의 이야기는 효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하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진심 어린 효행은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효 문화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참고> 조선 후기 정조 때 '금강산 지게효자 이군익'

금강산 지게 효자 이군익은 조선 후기 정조 때 실존했던 인물로, 지극한 효심으로 세상을 감동시킨 효자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전해져 내려오며, 특히 금강산까지 아버지를 지게에 태워 모시고 가서 구경시켜 드린 이야기로 유명합니다.

이군익의 생애와 효행

이군익은 1761년에 전라북도 진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 효심이 지극했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진 아버지가 평소 금강산 유람을 소원했으나, 어려운 형편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이에 이군익은 직접 지게를 개조하여 아버지를 태울 수 있도록 만들었고, 이 지게에 아버지를 모시고 천 리 길을 걸어 금강산에 도착했습니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전국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고, 그의 지극한 효심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정조의 표창

이군익의 효행은 당대 임금인 정조에게까지 알려졌습니다. 정조는 그의 효심에 감동하여 어명으로 쌀과 베를 하사하고,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효자 정문(旌門)을 세우도록 명했습니다. 또한, 그의 효행을 널리 알리라는 명과 함께, 그의 고향인 진안군 부귀면 봉암리에 효자비를 세우게 했습니다.

현재의 흔적

현재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봉암리에는 이군익의 효자비가 세워져 있으며, 그의 이야기는 진안군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군익의 이야기는 조선 시대 효 사상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자,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효행의 상징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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